예전 신축빌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살짝 신경쓰였던게 새집 냄새였다. 새 자동차에서 나는 냄새처럼 그저 냄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래도 새집 냄새 보다는 새집에 걸맞는 향기가 나을거 같아 디퓨저랑 향초를 좀 준비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좀 찾아봤는데 알고보니 새집은 냄새가 문제가 아니었다. 건축자재에서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유기화합물이 발생하여 사람들에게 유해물질을 노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포름알데히드, 벤젠, 톨루엔, 아세톤, 에탄디올 등의 발암물질과, 석면 등의 오염물질...
그렇다면 모든 새집 입주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정답은 베이크 아웃(Bake Out)이다. 베이크 아웃은 빵을 굽듯이 집안의 온도를 높여 유해물질을 최대한 발생하게 한 후 환기를 시키는 방법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집에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모든 창문을 닫는다.
열 수 있는 수납가구나 서랍장을 모두 연다.
난방을 35~40도까지 높이고, 10시간 정도 유지시킨다.
그 후 모든 창문을 열어 1~2 시간 정도 환기시킨다.
이 과정을 5회 정도 반복하라고 하는데, 실행이 가능하다면 하는 게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건이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때마다 집에 들어와 난방 높이고, 10시간 뒤에 2시간 환기시키고 다시 난방 높이고... 나도 이사전 집이랑 새집 거리가 50km 라 한번 밖에 못했다. 여의치 않다면 한번에 3일정도 난방하고 5시간 정도 환기하는 것도 좋다.
아무튼 내 경우에는 베이크아웃 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오후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급하게 난방하고 그 동안 차에서 자고, 오전 9시부터 가구가 들어오기로 해서 최대한 환기를 실행했다. 선풍기 다 켜고 쓸고 닦고... 그 뒤에 온 기사님들이 8월의 더위와 40도의 난방 때문에 눈으로 욕을 심하게 했다. 그 와중에도 새집은 다 그렇다면서 이해하는 천사같은 기사님도 있었다는.
어느 정도 짐을 다 들이고 나서 저녁에 사우나를 갔는데, 환기와 동시에 계속 집 안에 있으면서 때빼고 광내고 일을 한 결과, 가슴팍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다. 이렇게 나도 새집 증후군이란 것을 겪게 됐다. 다행스러운건 증상은 더 심해지지 않았고 1주일쯤 뒤에 사라졌다.
직접 해 본 결과, 난방비가 좀 들긴 하겠지만 베이크 아웃은 새 집에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친환경소재를 사용했다고 건강상에 무해하다고는 믿기 힘들다. 할 수 있다면 70시간 정도 굽는게 최고. 유해물질은 바닥에 깔리므로 창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것들은 현관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현관문을 반드시 개방. 난 열심히 물걸레질을 했다. 베이크아웃 후에도 지속적으로 환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 찾아보면 새집증후군을 위한 여러 다른 방법들이 있다. 네이버 쇼핑에서 새집증후군을 검색하면 편백수 피톤치드, 숯 등 엄청 많은 제품들이 평점 좋게 나와 있는데, 방송의 모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베이크 아웃이 우선이라고 얘기한다. 제품은 그 뒤의 옵션일 뿐. 나도 그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그리고 난 공기정화식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속리산 국립공원.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법주사가 생각이 난다. 추석 연휴에 슈퍼 이끌림으로 속리산을 다녀왔다. 아침 10시 반쯤 출발해서 13시 반쯤 도착했다. 일몰시간은 18시 30분.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 천왕봉으로 해서 문장대로 가 일몰을 보기로 결정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이 날 구름은 정말 최고였다. 오랜만에 보는 정이품송와 법주사를 보고 '초등학교 때 참 좋은 곳을 구경시켜 줬구나' 란 생각을 했다. 그 어릴 때 뭐 아나. 그냥 친구들이랑 함께 놀러간 그 자체만으로 좋았지. 좋은데 데려가도 아무 의미 없다.ㅋ
오늘도 페이스 조절하면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문장대에 올라 일몰을 봤다. 내가 본 일몰 중 가장 멋진 일몰 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아니 이게 가능하다고...? 사실 오늘은 정말 등산할 날이 아니었는데도 운명적으로 어쩌다 보니 오게 됐는데 너무 멋진 풍경을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일몰 촬영 때문에 30분 쉬지 않았으면, 6시간 코스이다. 산세가 힘든 편은 아니지만 긴 시간과 갈증 때문에 좀 피로가 왔다. 차에서 내리면서 4시간 코스만 생각하고 물을 챙긴 바람에 갈증이 심해서, 하산하자마자 편의점에서 찬 콜라와 포카리를 원샷했더니 2달이 넘도록 천식이 와서 혼났다.
언제 한번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이렇게 또 가본다. 본가에서 그나마 가까운 산 중 하나. 소요산. 사실 경기 북쪽 산들은 군부대가 근처에 많아 그닥 가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소요(逍遙)는 '유유자적하다', '한가롭게 걸어다니다', '여기저기 방황하다'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슬슬 산책하듯이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산행이 어렵지 않았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아담한 절도 있고, 폭포도 있고, 벚꽃, 진달래 모두 아기자기해서 잘 보고 왔다.
용문산은 나름 아껴놨던 산이다. 부모님과 함께 용문사까지는 여러번 왔었는데 등산은 처음이다. 멀리가기 힘들때, 경기도만 날씨가 좋을때. 머 이런 이유로 아껴놨었는데, 같이 등산 가자는 지인이 생겼다. 힘든데는 싫고 일출도 싫고 일몰도 싫고 간단하게 왕복 3~4시간 코스 다녀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길래 용문산을 추천했다. 약속하고 등산 전날 용문산 코스부터해서 쭉~ 훑어보는데... 초보자 코스는 아닌듯 했다.ㅎ 일단 그 사실은 숨긴채 아침 일찍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 동행은 우리 이모와의 수락산 이후 두번째이다. 천~ 천히 오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따라와서 놀랐다. 인터넷에 알아본대로 쉬운 산은 아니었다. 그래도 둘이라 떠들면서 올라가서 그런지 어떻게 올랐는지도 모르게 올랐다... 역시 용문사 은행나무가 정상석 옆에 함께 있다.
추석 연휴... 추석은 지냈고, 어디론가 가지 않으면 본가를 떠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급하게 찾다보니 찾다가 간월재가 생각이 났다. 억새를 목적으로 민둥산과 간월재를 메모 해놨었는데 하나 지우러 간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간월재의 억새밭과 일몰, 추가로 간절곶에서의 일출까지... 일단 11시 조금 지나서 본가에서 출발했다. 18시 10분 경의 일몰을 보려면 적어도 18시 이전에는 간월재에 올라야 했고, 예상 등산시간은 1시간 30분이었기 때문에 16시30분 까지는 간월재 주차장에 도착했어야 됐다. 본가에서 간월재 주차장(배내2공영주차장) 까지는 약 400km 예상 소요시간 5시간. 명절이라 그랬는지 경기도 빠져나가는데 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열심히 밟다보니 16시 30분에 겨우 도착했다. 역시 내 계획은 한치의 오차도 없지. 상쾌하게 등산 시작~! (aka. 사슴농장 코스)
주차장이 꽤 번잡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무래도 일몰에 맞춘 시간이다보니... 거의 임도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혹시 몰라 조금 바쁜 걸음으로 이동했고 간월재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됐다. 와우~ 인터넷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영남 알프스 간월재 버전을 실물로 보고 있으니 뿌듯했다. 이 좋은 날씨에 이 멋진 석양에 이 멋진 억새빛이 합쳐져 장관을 이루어냈다. 나도 온 김에 멋지게(?) 쇼츠를 하나 담아봤다.
저 먼곳까지 간 김에 간월산이든 신불산이든 봤으면 좋았겠지만 시간 관계상... 간절곶 일출은 보너스~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산의 정상에서 설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경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일인가. 일단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추위인데다, 강원도 산골에 폭설이 내리면 설경이 예술이겠지만, 그 정도로 눈이 오면 눈길에 운전도 쉽지 않을 뿐더러 고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내 의지 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찾아오는 법. 겨울 산행 준비는 진작에 끝내놨었고 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상청에서 3일전 눈예보를 확인했고, 어제까지 강원도에 폭설경보. 그리고 기온도 0도 정도라 도로도 거의 얼지 않았을테고, cctv로 눈덮힌 설악산과 태백산은 찜 해놓았고... 하지만 이제 설악산은 무릎 때문에 못갈듯 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설경으로 유명한 태백산을 가기로 결정했다.
※ 코스 유일사주차장 - 주봉 장군봉 - 정상 천제단 - 망경사 - 유일사주차장
3월말 무등산에서 우연히 설경을 보고 욕심이 생겼는지, 설레서 잠을 못잤다. 새벽 3시반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잠이 안와서 그냥 TV나 보다가 밤 홀딱 새고 3시간짜리 운행을 했다. 마지막 한시간은 너무도 괴로웠음. 집에 올때도...; 왜 맨날 등산하기 전날엔 잠을 못자는지. 딱 어릴적 소풍가는 그 기분.
자 그럼 눈뽕 가득한 감상모드 시작! 주차장 영하 7도. 정상은 대충 영하 11도. 바람 때문에 체감은 영하 20도 정도? 빨리 내려가고 싶은 생각 밖에는 ㅜ. 그래도 보다시피 오늘 하루는 정말 예술이었다. 예술이란 말보다는 더 감성적인 말로 형용되어야 할 것 같다. 정말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 정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바람도 없었고...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구름 예보를 확인했지만 어짜피 안갈수도 없는거, 구름이라도 멋진 구름이길, 곰탕만은 아니길... 했는데 곰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환상적이었다.^^ 내 인생에 '눈' 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 이 곳 태백산에서는 눈만 생각날 것 같다. 설경이 이렇게 감동적일 줄은... 다들 너무 쉽다고들 해서 방심하다가 초반에 설경을 보고 빨리 정상에 가고 싶은 마음에 오버 페이스가 됐다. 뭐 그래도 쉬운 코스라 별 문제는 없었지만ㅎ 가장 맘에 드는건 돌길이 거의 없다는거? 눈 때문에 약간 폭신한 느낌도 있어서 무릎에 충격 완화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다 필요없다.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으니까...
이번주는 어디를 가볼까... 했는데, 일단 각종 뉴스에서 이번 주말이 설악산 절정이라고 해놨고, 날씨는 구름 약간에 미세먼지 약간 높음. 일단 주말이고 사람들은 많이 올 것이고, 미세먼지 때문에 뷰는 별로일 것이고... 해서 날씨와 미세먼지를 만족시켜줄 만한 곳을 찾다가 두타산으로 결정했다. 두타산은 동해시와 삼척시에 걸쳐 있는 1,353m 높이의 산이다. 두타는 불교 용어로 마음의 번뇌를 털어버리고자 엄격하게 불도를 닦는다는 좋은 뜻이 담겨있다. 승려들이 수행하기 좋은 심산유곡이란 뜻에서 두타산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스님들이 너무 좋은 곳에서 수행하시려는거 아닌지... 두타산엔 볼거리가 많다. 두타산 보다 더 유명한 무릉계곡, 2020년부터 개방된 베틀바위 구간, 미륵바위, 두타산성길, 마천루, 박달계곡, 용추폭포, 관음암, 게다가 동해바다도 내려다 보이는... 산에서 바다도 즐길 수 있는 명산이다. 베틀바위 때문인지 한국의 장가계라고도 불리운다. 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코스는 무릉계곡 관광지라고 불리고 천천히 둘러보면서 걷는다면 시간은 약 4시간 정도로 예상된다.
두타산 정상을 맛보는 방법은 북쪽의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오르는 방법과 남쪽의 댓재에서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오르는 방법은 몇가지 뷰를 즐길 수 있지만 1100m 가 넘는 고도를 올라야 하고, 댓재코스는 뷰가 없지만 550m 정도의 고도만 올리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편도 6km 라 댓재코스도 쉬운 편은 아니다. 약간은 힘들겠지만 나는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목표로...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새벽에 도착하려고 무리하진 않았다. 다만 단풍철이므로 주차장이 모자랄 수는 있으니 일출시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 판교 집에서 무릉계곡 주차장까지는 250km. 왕복 기름값만 5만원, 톨비 3만원. 입장료 2처넌. 출발할 때는 볼거리 전부 다 찾아보고 뽕을 뽑으려는게 목표였는데, 하산길에 지쳐서 용추폭포 방향으로는 쳐다도 안봤다.ㅋ 아무튼 새벽 4시에 출발해서 6시 반에 도착했다. 도착 전에 동해휴게소에 들러 동틀녁뷰 한방 찍었다. 다행히 주차장은 한산해 보였다. 잠시 입산 준비를 마치고 7시에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밝은 시간대에 입산하는 것도 참 오랜만~ㅎㅎ;
그냥 천천~히 걸었다. 요즘 척추 중립에 대해서 조금더 훈련했고 효과가 있을지도 궁금했고, 하산길에 무릎에 끼치는 영향도 테스트 할 겸... 일단 베틀바위까지는 내 앞길을 막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약 50분 정도를 올라 베틀바위에 도착하자마자 그 절경을 즐기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돋자리 깔아놓고 막걸리를 드시고 계시는 약 15명 가량의 중년 아재들... 보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맞아, 내가 이 꼴 보기 싫어서 사람들 다닐 시간에 안다녔었지. 아재들이라 잠도 없는지 일찍도 올라왔네. 베틀바위는 베틀을 연상시키는 모양은 아니다.ㅋ 난 베틀바위를 대충 감상하고 빨리 그 곳을 벗어났다. 미륵바위 앞에서는 중년의 부부를 사진 찍어 주려다가 내 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깨졌다. 착한 마음으로 사진 찍어주려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리고 조금 더 걷다가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등산앱을 확인하며 대충 3시간 정도를 더 오를 생각을 하니,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민하지 말자. 미리 정한 목표대로 밀어 붙이자.' 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관광지 코스로 빠졌고, 나 홀로 적막한 정상 코스로 향했는데 어떤 블로그에서 본 것 처럼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 있을 만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낙엽이 많이 떨어져 쌓이면서 길을 감춰버린 듯한... 나도 두어번 경험해 버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등산앱을 따라 잘 찾아 올랐다. 고수가 앞서 가고 있었다면 훨씬 편했을텐데. 그래도 산 몇번 올라봤다고 멀~리 시야를 두면 어디가 길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는. 그리고 산악회나 동호회 같은데서 달아놓은 리본도 큰 도움이 되고. 아무튼 그렇게 정상까지 한걸음 한걸음 올랐다. 욕심내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허벅지 보다는 엉덩이에 무게를 실으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그게 아직 안된다. 그래도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을 뒤로 옮긴 것이 무릎이나 허리에 확실히 좋았다.
갈림길에서부터 약 1시간 반정도 올랐을 쯤부터 다리가 무적이 됐다. 몇번의 등산으로 알게된 사실 중 하나가 내 다리는 약 2시간쯤 오르막을 걸으며 고통을 느끼고 나면 다리게 감각이 없어지면서 최면이 걸린 것처럼 계속해서 오르막을 걷는다는... 남은 1시간 반을 그렇게 올랐다. 회사에서 가끔 답답함을 느낄 때 내 몸을 혹사시키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바로 그 상태가 되었다. 헬스장에서 스쿼트 100개 하면서 느끼는 고통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태. 숨은 차지만 뭔가 힘든 상태인데 나도 모르게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 고통스러운데 정상이 다가오니 즐거운? 아무튼 그렇게 정상에 올랐다... (정상이 아닌 상태...) 정상까지 3시간 50분. 약 4시간이 걸렸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상당히 빡센거다. 대부분의 산들이 정상까지 3시간 안걸리는데 4시간 걸렸으니... 잠시 숨을 고르고, 인증샷 하나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어차피 다음 스케줄도 없으니 천천히 무릎을 보호하며 내려가자고 다짐했지만, 역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다.ㅎ; 아줌마 한명만 나를 재끼고 내려가는 걸 보면 금세 맨탈이 무너진다. 아줌마보다도 못한 무릎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하산 길에 등산객들과 마주할 때마다 묻는 질문이 있었다. '아직 많이 남았나요?', '얼마나 더가야 되나요?' 그럼 나는 '거의 다 왔습니다.', '30분 정도 가시면 됩니다.', '1시간쯤 더 가셔야해요.', '아직 많이 남으셨어요.' 라고 답했는데, 처음엔 응원이었지만 갈수록 '뭐지 이 사람들. 그냥 아무 정보없이 오르는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3시간 코스에서 1시간 와놓고 많이 남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해주기가 참 난감하다. 거의 다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아직 많이 남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쭈욱 내려와 갈림길까지는 2시간 걸렸고, 무릎 통증 때문에 다른 곳을 더 둘러볼 여력이 없어서 곧장 주차장으로... 오늘은 무릎 보호대도 착용하지 않았고, 등산스틱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요즘 걸음걸이에 많이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도구에 의존하면 또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아서 맨몸으로 도전해 봤다. 당분간은 무릎 보호대는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고 등산 스틱은 사용하더라도 아주 살짝살짝 도움 받는 정도로만 사용하려고 한다. 오후 2시 이전에 내려와서 동해 좀 들쑤시고 다녀보려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역시나 차가 좀 막혔다. 이래서 남들 다니는 시간에 안다니는데. 요즘은 등산보다 장시간 운전하는게 더 괴롭다. 후... 아무튼 오늘 두타산 방문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예보대로 날씨도 좋았고... 볼거리도 많았고... 정상 욕심만 없으면 다른 모든 컨텐츠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고, 볼거리는 주왕산에 못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것 같다. 정상까지도 거리는 좀 있지만 무섭거나 위험한 길 없이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길에서 1.8km 속도로 걸었다니...ㅋ 오늘의 혹은 한 다섯그룹 정도의 술판 벌린 아재들. 국립공원이 아니라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건지, 내가 운좋게 지금껏 저런 그룹을 안만났던건지.
언제 다시 산행을 시작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남들과는 다른 무릎을 장착하고 굳이 등산을 계속 해야할까 라는 물음에 내 대답은 '아니오' 였다. 하지만 허벅지를 어딘가에 써야만 만족스러울 것 같은 느낌이라 결국은 다시 등산으로 돌아갔다. 하필이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추위에... 내 마음은 언제나 설악산이다. 하지만 1년전 이맘때 단풍구경하며 공룡능선 한번 건너보려다가 비 때문에 고생만 짤짤이 하고 다음날 허리 작살나고 1년을 쉬었다. 주말보다 사람이 적은 평일에 완벽한 단풍에 구름한점 없는 날이지만 나는 설악산 오색코스를 포기하고 그나마 일출뷰가 좋을 것 같은 계방산으로 향했다. 1년이나 쉬면서 몸 상태도 체크하기 전에 설악산은 무리지. 잘 시간도 없었고... 계방산은 언젠가 설경을 만끽하기 위해 남겨 놓았던 곳인데, 일출로 써버렸다. 출발 전날에 겨울산행을 좀 찾아봤다. 아직 10월 중순이긴 하지만 10월 말에 소백산 정상에서 꽁꽁 얼었던 생각에 미리 대비를 좀 했다. 좋은 구스다운 입지말고 솜패딩을 대충 입는 것에 공감, 핫팩하나 챙기고... 정상 기온은 약 영하 3도 예상, 근처 동네도 영하 3도... 산에서의 영하 3도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고고싱.
일단 10시반까지 야근하고 집에와 11시까지 짐싸고 취침. 새벽 2시에 일어나 짐챙겨서 2시반에 출발. 운두령 쉼터에 4시반 도착. 정비하고 5시에 출발했고, 6시 30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일출시간은 6시 37분. 너무나도 완벽한 계획... 간만에 어둠속을 헤치며 한걸음씩 조심조심 내딛었다. 겨울에는 땀이나지 않게 땀이나기 직전 옷을 벗고 춥기 직전 옷을 입는 것을 반복하라고 하는데 생각만해도 너무 번거로음... 그냥 땀나면 나는대로 꿋꿋이 올라갔다. 계방산이 조금 독특한 것은 운두령 자체가 높아서 그런가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내리막이 꽤나 자주 나온다. 정상가는 길에 내리막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난이도로 보자면 쉬움. 느긋~하게 걸어서 1시간 반 소요됐고. 어쨌든 잠시 힘듦은 느낄 수 있을 정도? 지금까지 다른 산은 어떻게 올라갔었나~ 싶다. 간만에 산의 정상에 서서 탁 트인 사방을 내려다 보니,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상까지는 언제나 좋았지. 내려갈 때가 문제였고.
계방산도 설산으로만 생각해 왔는데 겨울을 제외하자면 봄/여름/가울 중에서는 최고로 멋진 날을 보게 된 것 같다. 연이어 구름한점 없는 날이었고, 갑작스레 영하권으로 날이 추워진 바람에 미세번지도 다 날아가고 이 모든게 다 계획된 시나리오라니...ㅋ 사방에 오대산과 설악산이 있지만 정확히 어디가 어딘지... 사진으로 설명이 되어 있어도 잘 모르겠음. 5시에 입산해서 약 4시간 동안 만난 사람은 아저씨 총 4명. 요즘 단풍철이라 어딜가나 줄을 서 있을텐데, 미안하지만 계방산의 인기는 이 정도인듯... 1년 동안 푹~쉬고 간만에 등반한 느낌은 어땠나요? 라고 물으신다면 한가지 빼고는 완벽했다고 해야 하나. 일출을 보기 위한 완벽한 시간 관리. 영하 5도를 버틸 수 있는 장비 착용. 아직까지는 꿀리지 않는 적당한 허벅지. 하지만 하산길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시작된 무릎 통증은 1년을 쉰다고 달라진게 없더라. 캄캄한 새벽 등반은 여전히 귀신 나올까 무섭고. 그래도 간만에 느낀 새벽 공기와 가쁜 숨을 느끼면서 흘린 땀. 이게 바로 등산 맛집이지. 단풍 시즌이 끝날 때까지 약 한달 정도(?)는 몇군데 더 다녀볼 예정이다. 현재 계획은 설악산의 적당한 단풍구경, 화암사 신선대에서의 울산바위 뷰, 민둥산의 억새밭, 두타산, 청량산, 속리산 단풍구경 정도. 그리고 겨울이 오면 눈꽃구경 태백산. 요즘 차만 타면 졸린데 이 먼곳들을 언제 다 돌아다닐꼬...